독일 사람들이 즐기는 묵직한 라거, 복
통상적으로 '라거(Lager)' 맥주는 '에일(Ale)' 맥주보다 가볍고 산뜻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라거 맥주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복(Bock)' 스타일 맥주가 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맥주인 'Strong Beer'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라거이지만 색다른 매력을 지닌 복 맥주의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복 맥주의 정의
복 맥주는 중세 시대 독일 '아인베크(Einbeck)'에서 수출 용으로 만든 맥주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미가 떨어져 나가고 말이 일부 변형되어 현재의 '복(bock)'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통상 알코올 도수가 6% ~ 7% 이상으로 도수가 높은 맥주입니다. 영어 'Strong'과 처럼 다른 맥주 뒤에 붙어서 알코올 도수 등이 강화된 맥주를 표현할 때 사용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젠복(Weizenbock)'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바이젠 맥주라는 뜻입니다. 다만 독일에서 그냥 복 맥주라고 하면 흑맥주인 '둥켈복(Dunkelbock)'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게도 복 맥주의 상징은 염소인데, 바이에른 방언에서 'bock'이 염소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복 맥주는 일반적으로 맥아 맛이 강하고 무거운 맥주입니다. 색상은 빵과 같은 어두운 갈색입니다. 맥아의 맛이 강하게 느껴져서 보리 특유의 맛과 동시에 달콤한 맛이 납니다. 홉의 맛이 거의 나지 않아서 마치 물에 맥아와 알코올을 섞은 맛이 납니다. 여담으로 복 맥주는 종교 개혁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가 즐겨 마신 맥주로도 유명합니다.
수도사들의 구원자, 도펠복
한국에서는 복 맥주보다 '도펠복(Doppelbock)' 맥주가 유명합니다. '도펠(Doppel)'은 영어로는 'Double'이란 뜻입니다. 단 알코올 도수가 2배라는 뜻은 아니고 Level 2라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 맥주는 최초에 유럽 수도승들이 사순절(부활절을 앞두고 40일 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버티기 위해 양조된 맥주입니다. 성경에는 단식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은 있지만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따라서 수도사들은 보리로 만든 맥주를 식사 대용으로 마시곤 했습니다. 일종의 마시는 빵에 가까웠습니다. 도펠복은 맥주 한 잔이 식사 한 끼를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맥주입니다. 당과 영양소 모두 일반 맥주보다 높았습니다. 배고픔에 고통받는 수도사에게는 구세주와 다름없었습니다.
도펠복은 알코올 도수가 7% ~ 9% 수준으로 일반 복에 비해서 높습니다. 맛도 더 달짝지근하고 맥아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라거 맥주지만 에일 맥주와 혼돈될 정도로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현대는 수도원의 수도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도펠복 맥주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파울라너 살바토르(Paulaner Savator)'나 '아잉어 셀러브레이터'(Ayinger Celebrator)'를 맥주 전문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파울라너 살바토르'는 '파울라너 양조장의 구세주 맥주'라는 뜻입니다.
덧붙여 도펠복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야화가 있습니다. 중세 유럽 수도사들은 사순절 기간 도펠복 맥주를 마시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이에 교황에게 마셔도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맥주가 독일에서 로마까지 이송되면서 그 맛이 변하게 됩니다. 상한 맥주를 마신 교황은 이 맛없는 맥주를 마시는 수도사를 불쌍하게 여겨 공식적으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실수로부터 태어난 아이스복
가장 강력한 복 맥주는 도펠복이 아니라 '아이스복(Icebock)'입니다. 독일 맥주 중 가장 강력한 맥주 중 하나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10% ~ 14% 수준입니다. 이 맥주는 실수로부터 탄생됐습니다. 19세기 말 바이에른 지역의 한 양조사가 완성된 맥주 통을 추운 겨울날 밖에 방치하였습니다. 그 결과 맥주는 얼음에 숙성되었습니다. 양조사는 낙담했지만 맛을 보니 독특한 고도수 맥주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얼음 숙성 과정을 체계화하여 아이스복 맥주가 탄생했습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맥주입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 등의 다른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아이스복 맥주에 착안하여 다양한 맥주를 출시했습니다. 한 양조자의 실수에서부터 독일이 아닌 타 지역에서도 인기 있는 독특한 맥주가 탄생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