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안녕하세요. 가장 개성 있는 맥주 종류를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 줄여서 IPA)'을 꼽을 것입니다. 씁쓸한 홉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맥주로 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척도인 'IBU(Internatinal Bitterness Unit)'가 70 ~ 80 수준으로 일반적인 '페일 라거(Pale Lager)'의 7배 ~ 8배 수준입니다. 알코올 도수도 5% ~ 8%로 높은 편입니다. 수제 맥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맛보면 그 독특한 맛에 중독되는 맥주입니다. 필자도 가장 좋아하는 맥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IPA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IPA의 기원 및 특징
19세기 초 대영제국(지금의 영국)이 식민지였던 인도에 자국의 '페일 에일(Pale Ale)'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맥주입니다. 19세기 초에는 수에즈 운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인도까지 맥주를 보내기 위해서는 희망봉을 경유하는 긴 항로를 경유해야 했습니다. 이 항로는 거리도 멀었지만 무엇보다도 무더운 적도 지역을 2차례나 지나는 항로였습니다. 때문에 맥주가 쉽게 변질되었습니다. 따라서 긴 항해 끝에 인도에 도착한 맥주였지만 상했거나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당시 양조가 들은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많이 사용하여 맥주의 보존성을 높였습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IPA라는 맥주 스타일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Russian Imperial Stout)'가 러시아에서 양조한 맥주가 아니라 러시아 수출용 맥주인 것처럼, IPA도 인도에서 양조한 맥주가 아니라 인도에 보급한 맥주란 뜻입니다.
양조가 들이 방부 목적으로 홉을 많이 첨가했지만 맛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IPA는 홉의 특성이 가장 강하고 공격적으로 드러나는 맥주입니다. 홉의 쓴맛과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나는 맥주입니다. 오늘날 수제맥주 시장은 홉의 개성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가장 대표적인 수제 맥주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IPA 스타일 맥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맛이 굉장히 풍부한 맥주이기 때문에 곁들여 먹는 음식 궁합이 중요합니다. 어떤 음식이든 잘 어울리는 '페일 라거(Pale Lager)'와는 반대입니다. 'Hell's Kitchen' 등 TV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Chef 고든 램지가 괜히 한국에서 저 풍미 '라이트 라거(Light Lager)'인 카스 맥주 광고를 찍은 것이 아닌가 봅니다. 요리사 입장에서는 요리의 맛을 살려주는 맥주가 좋을 테니까요.
영국식 IPA
IPA의 원조는 영국입니다. 따라서 자국에서 IPA를 접한 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영국식 IPA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영국에 갑니다. 그렇지만 영국에 가서 IPA 맛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영국식 IPA는 라거 맥주의 유행에 따라 본래의 특색을 잃고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영국 IPA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서 홉을 많이 첨가했습니다. 또한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맥아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효모가 맥아당을 분해하면서 알코올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국 전통 IPA는 홉의 씁쓸함과 맥아의 끈적한 단맛이 함께 느껴지는 고 풍미 & 고 알코올 맥주였습니다. 그렇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맥주 보관 기술이 좋아져서 홉이나 알코올의 도움 없이도 장기간 맥주 보관 및 운송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에 라거 스타일의 청량한 맥주가 유럽 전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가격 측면에서도 대기업식 라거 맥주의 가격 경쟁력을 맥아와 홉 등 원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IPA가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전통 IPA를 찾는 고객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현재 영국에서 여전히 전통 IPA에 가까운 제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라거의 특성을 차용한 IPA가 많습니다. IPA지만 알코올 도수가 4도 수준인 제품들도 있습니다. 사실상 IPA가 아니라 일반적인 페일 에일인 오디너리 비터에 가까운 풍미입니다. 음식 취향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전통적인 IPA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시대 흐름에 따른 맥주 유행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식 IPA
IPA의 원조는 영국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미국 수제 맥주 시장을 대표하는 맥주 스타일입니다. 미국 수제 맥주 양조장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맥주를 만들며 IPA는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미국식 IPA는 홉의 맛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맥주를 추구합니다.
영국식 IPA와 미국식 IPA의 가장 큰 차이는 홉입니다. 영국식 IPA도 홉의 맛에 중점을 둔 맥주이지만 미국식 IPA는 홉의 맛 외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산 에일 효모의 특성 때문입니다. 미국산 에일 효모는 발효력이 좋습니다. 이에 맥아 당을 많이 섭취하여 알코올로 분해합니다. 따라서 맥아의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깔끔해집니다. 또한 미국산 에일 효모는 발효 과정에서 별도의 부산물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는 과일 향이 나는 부산물(에스테르)을 만드는 영국 효모와 다른 점입니다. 두 번째로 홉의 품종 차이입니다. 영국식 IPA에 사용되는 홉은 주로 허브 맛이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미국식 IPA에 사용되는 홉은 감귤과 같은 시큼한 풍미가 강하게 나는 홉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미국식 IPA는 맥아 및 효모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으며 강력한 홉의 풍미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펍이나 맥주 가게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IPA는 미국식 IPA입니다. 라벨에 거위가 그려진 '구스 IPA'나 스컬핀 물고기가 그려진 '스컬핀 IPA'가 대표적입니다. 단 후자의 경우 수입 중단으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데 만약에 보게 된다면 꼭 구매를 권장드립니다.